강원도 삼척 도계
광산으로 화려한 역사가 살아 숨셨던 곳!
삼척의 역사는 조선시대까지 삼척 도호부가 주된 무대였다.
다만 현재까지 전해오는 너와집과 굴피집이 조선 후기 이전부터
이곳에 화전민이 살았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너와집과 굴피집은 우리나라 초가집, 기와집과 달리 지붕을 나무로 꾸미는
강원도의 특색 옛 가옥 형태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삼척 탄광을 개발하면서 강원도 도계읍의 운명은 바뀌게 되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수탈한 자원 중에서 석탄은 해군 함정의 연료와 제강용 환원제로 쓰이는 중요 광물자원이었다. 일제는 ‘조선광업령’, ‘덕대광업제’ 등을 통해 광맥 개발의 활성화에 박차를 가했다. 1937년부터는 석탄 생산량조차 일본 해군의 기밀이었다.
1938년에는 국가가 광물을 강제 개발을 명령할 수 있는
‘조선 중요 광산물 증산령’을 공포하기까지 했다.
을사늑약 체결 후 고종 43년(1906)에 ‘조선 광업법’ 공포와 한일합방에 따른
일본의 자원 수탈 정책으로 본격화된다.
일본이 수탈한 광물자원 중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된 것은 금, 무연탄, 철이었으며, 이 중 무연탄은 해군 함정의 전략적 연료와 제강용 환원제 등으로 꼭 필요한 광물자원이었다.
일본 해군은 유연탄이 연기 때문에 군함의 위치가 노출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동 탄광에서 생산한 무연탄을 군함 연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31년 만주사변부터 만주 타이나 일본탄은 산지에서의 소비 급증으로
공급이 달리자 북한 지역의 아오지 탄광 개발에 이어
남한지역의 영월 탄광, 화순탄광, 삼척 탄광의 개발을 본격화한다.
1937년부터는 석탄 생산량조차 일본 해군의 기밀로 분류되어 발표가 중단될 만큼
평양 탄광 등지에서 생산하는 석탄은 중요한 자원의 보고였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에 일본제국주의는 전시체제 속에 ‘배급 통제 규칙’을 공포하고
석탄을 수송하던 선박의 징발, 국내 석탄 수급의 통제 등을 시행한다.
또 1938년에는 ‘조선 중요 광산물 증산령’을 공포하는데,
이는 정부가 광물을 필요로 할 때는 강제로 개발을 명령하는 제도이다.
전쟁을 수행하려고 석탄을 증산하기 위해 만든 법령이다.
이로 인해 광업권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본이 없어 개발을 하지 못하는 조선인의 광업권이 강제로 박탈당한다.
1940년 8월 조선총독부는
석탄 같은 광업에 대한 업무를 대행하여 집행하는 광업 국책회사인 ‘조선광업진흥회사(주)’를 설립한다.
조선 총독이 사장과 감사를 임명하고 식산국에서 감리관을 파견하여 직접 감독하면서 석탄 생산을 독려했다.
1930년 석탄 88만 톤을 생산하던 것이 1935년에는 208만 톤, 1938년에는 390만 톤으로
석탄 생산량이 급증한다.
또 태평양 전쟁 발생으로 석탄 수요가 늘어난 1941년에는
712만 톤을 생산할 정도로 석탄의 생산 규모는 계속 증가한다.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인 1944년에는
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서 석탄산업은 사상 최대의 생산량인 744만 9천 톤을 기록한다.
8.15 해방으로 탄광 운영권은 우리나라에 넘어왔지만,
일본인 기술자가 철수하고, 강제 징용된 광부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매장량이 많은 북한 지역을 중심으로 탄광이 개발되다가 분단이 되면서 남한은 생산량 부족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이 전력 송전을 중단하면서 석탄 증산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
8.15 해방으로 일본인이 철수하면서 석탄산업은 우리나라에 주도권이 넘어왔지만 운영은 공동화 현상을 맞는다.
일본인 관리와 기술자가 철수한데다가 강제 징용된 광부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탄광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게다가 해방 직후에는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이 탄광촌에서도 이어지면서
탄광촌의 치안 부재라는 혼란까지 겹쳐졌다.
탄광에 잔류하기로 한 탄광 노동자들은 자치위원회를 구성하여
일본인 중심의 탄광을 해산하고, 탄광 시설을 확보하고 나섰다.
광산 자치위원회 구성에도 좌우익의 세력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다툼이 전개되었다.
또 탄광 노동자들을 위한 생필품 보급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이중고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의 탄광 개발은 북한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되었다.
그런데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남한 지역의 탄광은 삼척 탄광을 비롯하여 11개뿐이었다.
매장량으로 보면 총 석탄 매장량의 90%가 북한에 존재하는 실정이어서
남한의 탄광 개발은 시급했다.
생산량으로 보면 해방 전까지 북한에서 80%의 석탄 생산을 담당해왔다.
38선의 분단은 남한의 에너지 자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석탄 에너지원이 부족하여 1947년 11월에는 철도 운행이 중단할 정도였는데,
설상가상으로 1948년 5월 14일,
북한은 남한지역 총선거와 단독 정부 수립에 반감을 품고 송전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38선으로 남북이 분단되고도 해방 이후에도 석탄 생산이 넉넉한 북한은 남한지역으로 전력을 공급하던 터였다.
전력 공급 중단은 남한 지역의 산업 시설 가동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70km 정도 떨어진 인근 지역에 삼척 탄광이라는 큰 탄광이 있었지만,
삼척에서 영월로 향하는 도로나 철길이 없어서 수송이 불가능했다.
삼척 탄광의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삼척탄을 묵호항으로 보내고,
묵호항에서 미군 LST 선박을 활용해 남해를 경유하여
인천으로 운반한 뒤에 인천에서 철도로 영월까지 우회하여 수송했다.
삼척 탄광의 석탄은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개발한 것이었으므로
삼척에서 서울이나 부산 방면으로의 교통망은 없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남한의 시급한 사정은 광업 법령을 어기면서까지 덕대 허가를 통해 석탄 생산에 나선다.
또 1950년에는 전쟁의 와중에도 국영기업인 대한 석탄공사를 설립한다.
갱도 복구 작업은 1951년 3월 은성광업소가 먼저 착수에 들어갔으며,
이어서 화순광업소·도계광업소·영월광업소·장성광업소 순으로 시행되었다.
광업소의 복구 사업은 대량 생산과 발전용 석탄의 확보에 우선순위를 두었으며,
특히 삼척지구(장성광업소와 도계광업소)와 영월광업소의 복구에 치중하였다.
복구 초기에는 문경 광업소·단양 광업소·경주 광업소 등 규모가 작은 광업소라든가
개발 초기의 함백광업소 등은 복구 작업이 형식적으로 이뤄질 뿐이었다.
저탄시설이나 운반시설에 대한 최소한의 보수 작업이 진행될 뿐,
자금 부족 때문에 본격적인 복구는 이뤄지지 못했다.
전쟁의 피해는 시설의 파괴 이외에도 탄광 노동자가 흩어지면서 정상적인 생산을 더욱 어렵게 했다.
전쟁 중에 광부를 소집하는 것이 어려웠으나,
광업소가 다시 문을 열자 찾아오는 직원들이 늘어났다.
대한 석탄공사 산하 광업소들은 석탄 생산의 시급성 때문에 복구 작업과 생산 작업을 병행했다.
그 결과 은성광업소는 1951년 4월, 장성광업소와
도계광업소는 9월, 영월광업소는 10월, 화순광업소는 11월부터 석탄 생산이 이뤄졌다.
석탄을 수송하는 철도는 산업 발전의 동맥이었다.
영암선 개통을 주문한 이승만 대통령, 태백-제천 간 태백선 개통을 주문한
박정희 대통령 등 태백과 삼척의 석탄 수송을 위해 대통령까지 나서서 산업철도 건설에 주목했다.
탄광 지역은 험준한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어 철도 공사는 난공사였다.
이러한 철도 공사를 위해 육군 공병대가 파견되었다.
삼척 탄광(도계광업소, 장성광업소)이 개관하면서 일제는 일본으로 삼척단을 수송하기 위해
1939년 도계-묵호항 간 철도를 개통한다.
석탄을 수송하는 철도는 산업 발전의 동맥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탄광 개발에 앞서 석탄 수송을 위한 철도를 먼저 부설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석탄개발과 철도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삼척 탄광의 탄이 철도를 이용하여 철암과 도계에서 묵호로 수송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정부는 심각한 연료난 극복을 위해 석탄 증산 정책을 추진하며,
영암선, 함백선, 문경선 등 석탄산업철도의 부설에 착수하였다.
1960년대 들어서 디이젤 기관차가 등장했으며,
1975년 12월 5일에 북평역에서 정선군 고한역까지 전철이 가설되어 전동차가 운행했다.
1995년 정선군 고한읍과 사북읍 지역주민이 2월부터 폐광 주민 생존권을 위한 농성을 시작했다.
제2의 사북사태까지 언급한 강도 높은 주민운동에
굴복한 정부는 3월 3일 주민들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는 협상안을 내놓다.
이를 통해 1995년 12월 29일 내국인이 출입할 있는
국내 유일의 카지노를 설립할 수 있는 ‘폐광 지역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일명 폐특법)’을 공포하기에 이른다.
폐광촌 4개 시군(태백 삼척 정선 영월)과 산업자원부의 기금을 바탕으로 (주) 강원랜드를 설립하고
2000년 10월 카지노를 개장한다.
폐특법을 통해 설립한 카지노는 폐광 지역의 대체 산업을 지원하면서 일정 부분 숨통을 열어준다.
하지만 카지노 설립으로도 폐광 지역의 지역 경제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했다.
대체 산업 유치를 약속하고 폐광에 들어갔던 대규모 탄광들(강원탄광과 함태탄광) 조차 움직임이 없었다.
대체 산업에 목마른 태백시민들의 반발 끝에 강원탄광은 기부금을 내놓았고,
함태탄광은 부지 일부를 태백시에 기부체납하는 것으로 흐지부지됐다.
이 부지를 활용한 것이 2006년 개장한 탄광체험공원이다.
대체 산업이 지지부진한 채 주민이 급감하면서 지역민의 생계마저 어려워지자,
태백시민들은 1999년 12월 12일 ‘태백시민 생존권 찾기 총궐기대회’를 다시 열었다.
이를 통해 태백시는 석탄 가격 안정 지원금을 재원으로 하는 탄광지역개발사업비(탄개비)를
연간 1천억 원씩 태백시의 대체 산업을 육성하는 명목으로 10년간 지원받는 성과를 거둔다
.그리고 이듬해 2000년 10월 10일에는
삼척시 도계지역 주민이 상가 철시, 주민 삭발, 철로 점거 등의 농성을 펼친 끝에 탄개비를
모든 폐광도시(태백 삼척 영월 정선 화순 보은 상주 등 7개 도시) 지원하는 성과를 거둔다.
폐광 주민들은 생존권이 위협을 당할 때마다 강도 높은 대정부 투쟁을 통해
지원을 이끌어내는 자구책을 모색했으며,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많은 탄광인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삼척 도계!!
삼척 도계지역은 현재 유리산업으로 독특한 지역 문화를 꽃피우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마을 이곳저곳에 살아 숨 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탄광은 역사 속에서 나라 잃은 슬픔과 해방 이후 불이 꺼지는 않는 에너지가 넘치는 곳
현재는 공동화 현상으로 문화와 건물양식 역사의 산증인들만 남아있는
한국의 리얼 탄광이 하나밖에 남아있는 않은 우리의 중요한 유산이다.
그래서 트릭아트 전시관을 탄광체험형태로
트릭아트 기법을 이용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흥미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과 지역 홍보 담당으로 전시관을 만들게 되었다.
삼척 도계 "빛나는 도계" 트릭아트 전시관은 무료이다!!
누구나 간접적으로 재미있게 탄광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탄광 지역에 삼척 도계!! 탄광 스토리를 들려줄 트릭아트 전시관을 만들었다..
아직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깨끗한 벽면!!
트릭아트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우선 벽면 처리를 단단하게 해야 한다!
하도가 단단히 한 후 스케치와 기본톤을 깔아준다!!
평평했던 벽면에 우선 구멍을 냈다!
슬슬 뚫린 벽에 숨겨진 탄광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지금 그려진 기계 같은 것은 무엇일까?
총은 아닙니다!! 하하
탄광 개발 초기에는 정과 망치를 이용하여 감석을 뚫는 수굴 방식으로 굴진과 채탄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대신하는 착암기가 1930년 대형 광업소를 중심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착압기는 탄광 굴진 작업의 발달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간접 체험 형태로 착압기를 트릭아트 기법을 이용하여 그렸습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모과 보통 신발과 다른 안전장화를 착용하고,
캄캄한 갱내를 비추는 안전등을 의지한 체 굴진 작업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고증작업을 거치며, 트릭아트를 이용한 스토리텔링을 했습니다.
완성된 트릭아트 작품과 함께 모델로 활동해 주신 마을 이장님입니다!!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힘써주는 우리 이장님 멋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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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에 들어갈 때 탄광 열차의 모습을 재현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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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패널을 이용하여 벽면은 갱도 주지 목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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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작업이 완성되어 갑니다
벽면의 굴은 석탄 사이사이로 주지목이 벽면을 지지하고 있고
이중 패널은 갱도 열차로 마치 광부가 갱도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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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없는 공간에 얼굴을 들이 밀면 사진이 완성되는 형태의 이중판넬 기법입니다.
광부가 갱도가 들어가기 갈 때 관람객에게 잘 다녀오겠다며, 손을 흔드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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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도 열차 트릭아트의 완성은 역시 모델이 있어야죠!!
도계 마을 이장님께서 모델로 참여해 주셔서 트릭아트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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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귀퉁이에는 탄광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물건과 안전 모자를 들고 있는 쥐의 모습이 보입니다.
탄광에는 쥐를 잡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죠!!
아무래도 갱도의 굴이 불완전할 때 쥐가 가장 먼저 도망치는데,
쥐를 따라가면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쥐를 따라갔더니, 희생을 피할 수 있었다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쥐가 안전모를 들고 있도록 표현했습니다.
도계의 작은 트릭아트 전시관은 자세히 잘 살펴보면,
도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요약본으로 만들어 놓은 재미있는 탄광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간접 체험 현장입니다!!
강원도 도계 무료 트릭아트 전시관!!
요즘 코로나 시기!
강원도 태백 험난한 고 불길을 넘어 바로 아래 위치한 재미있는 지형의 "도계"
가족여행으로 제격이겠죠?
트릭아트를 제작하면서, 도계의 역사와 지리, 환경 등 고증작업을 거치며,
한국의 탄광 역사도 같이 공부하게
된 뜻 깊은 현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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